대략 한 10여년 즈음 전의 이야기이다.
이제는 말을 해도 괜찮을 것 같아 입을 열어본다.일본의 모 출판사에 방문했는데 대단히 친절한 편집장님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직업이 만화 그리는 일이라 편집자는 많이들 만나 보았는데 이 분은 독특했다.아주 기억에 오래 남은 ... 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한번 만나고 싶은 편집자다.(현재 일선에선 물러 났다고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그분이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 최상,한국은 군대소집영장이 갑자기 나옵니까? "
그 당시는 지원을 해도 자신이 원하는 날짜에 가는 지금같은 시대가 아니라 국방부가 정한 날에 입대해야했던 시기다.
" 아니요?영장은 늦어도 한달전에 나옵니다.충분히 준비할 시간을 줍니다."
그 편집장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곤 사연을 들려주는데 모 한국인작가가 자신의 메인 어시스트가 갑자기 군대에 가게 되어서 원고가 펑크가 났다고 말했다는 것이다.그 순간 전후 사정이 대충 예상이 되었다.(그 작가는 당시 유명한 한국작가였다.)
나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편집장은 대충 <그런 뻔한 거짓말을 하다니>로 요약되는 말을 했고 나는 더듬더듬거리며 변명을 해야했다.
일본이 징집문화가 없다고해서 너무 과장해서 이야기하거나 속이면 안된다.특히 일본사람은 거짓말을 아주 싫어한다.솔직하게 사정을 이야기해야지 대충 무마하려 한국식의 거짓변명을하면 상대측 일본인은 크게 화를 낼 수 있다.특히 만화계같은 곳엔 <밀리터리 매니아>가 많아서 한국의 징병제도에 대해서 의외로 잘안다.
그러니 그걸로 뻥을 치면 부끄러운 경험을 할 수도 있다.
그냥 솔직하게 "원고가 늦어졌습니다"라고 말했다면 갑작스러운 하소연은 듣지 않았을 것이다.일본인이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적어도 내 경험에는 그렇다.
생각해보시라 . 편집장과 만화 이야기를 하다가 일면식도 없는 만화가의 변명을 대신해줘야하는 난처함이 어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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