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무리하며...
로 시작되는 글을 쓰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편입니다.어짜피 1년의 의미를 규정한 것은 우연의 결과일 뿐이며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탄생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서력과 달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동양의 달력이 틀린 것 아니겠습니까.서기 2012년에 세상이 멸망한다는 낚시질에 수많은 미스테리 오컬트 장르를 열광시켰던 마야의 달력 또한 그렇죠.지구는 그냥 태양을 기준으론 돌고 있을 뿐이며 달력을 만들고 1년 365일을 정한 것은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 입니다.
그럼에도 마지막과 시작의 의미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우리는 인간이며 저도 인간이죠.인류의 최초기록이라고 안정되는 바빌로니아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기록에도 달력은 존재합니다.달력은 인류 문명 역사상 성경보다 더 많이 팔린 출판물입니다.아마도 1년을 기준으로 나누는 것은 농경문화가 시작된 이래 가장 혁명적인 일이었을 것입니다.1년을 기준으로 성장하는 작물의 성장주기를 기록할 수 있었으며 이것은 곧 생존의 문제와 바로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록과 제가 인생의 목표로 삼은 만화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문자가 발명되기 이전에 그림은 존재했고 문자의 발명이후엔 문자의 이미지를 더 잘 전달하기 위해 삽화를 넣었고 그렇게 만화로 자연스럽게 진화했습니다.인쇄기술의 혁명적인 발전과 더불어 말이죠.종이가 아주 비쌌던 시절이 있었습니다.그런 시절에는 애들 장난같은 만화가 대중화되지 못했습니다.불과 몇 백년 전까지만해도 종이에 글을 쓴다는 것은 최고의 권력자들만이 할 수 있는 행위였죠.기술혁명과 더불어 만화가 등장했고 이제는 종이라는 한계를 떠나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올해는 아주 상징적인 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세계에서 가장 많은 만화책을 판매하던 일본이 최고의 전성기 시절대비 판매량 절반이하로 내려갔기 때문입니다.더불어 본격적으로 인터넷 매체에 나서기 시작한 해입니다.그야말로 폭풍전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지금까지 일본만화는 번역된 책으로 보거나 불법사이트에서 번역한 저질의 캡쳐본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그러나 제 예상으로는 아마도 일본의 포털사이트에서 직접 세계 여러나라의 언어로 번역해 서비스를 시작할 것으로 예상됩니다.이미 일본의 유명 애니메이션 회사 선라이즈에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한국의 회사가 일본의 컨텐츠를 수입해 이익을 얻는 방식은 점점 더 어려워질 지도 모릅니다.또한 전통적인 통계가 먹히지 않게 되어가고 있습니다.시장이 어느 방향으로 나갈 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고 있는 중입니다.
사실 작가인 저에게는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한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디지털화가 시작되었고 지금은 아날로그로 그리는 작가가 거의 없기 때문이죠.그럼에도 저는 아날로그로 시작한 세대이기 때문에 인쇄된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둡니다.그래서 억지 반론을 꺼내어 봤습니다.중세의 암흑기를 거쳐 현대 르네상스 혁명이 가능했던 것은 수도원 서고에 잠들어있던 수많은 위대한 문명의 유산이 있었기 때문이다.단지 영과 일의 2진법을 기준으로 기록된 전기 신호를 사용하는 이 기계들의 전원이 끊어지는 순간 모든 인류문명은 회복불가능의 단계로 들어갈 거라고 고고학자들은 경고하고 있다고...
답은 간단했습니다.알고 있지만 변화는 거스를 수 없다.
올해는 그런 의미에서 특별한 한해였습니다.내년은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매년 매일이 항상 새로운 시대...우리는 그야말로 마법이 현실이 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상상이 현실이 되고 생각이 곧 모든 것인 시대가 되었습니다.
비록 달력에 쓰여진 12월 31일 ... 그리고 몇 시간 후면 다가올 1월 1일은 기록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오늘을 넘어 내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장문의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둥지나무였습니다.